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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주권’ 유린당했는데 국민안전처는 31시간 동안 ‘쉬쉬’ 청와대는 달랑 ‘유감’ 표명
등록날짜 [ 2016년10월14일 10시01분 ]
[아유경제=정훈 기자] 우리 영해와 해상 주권이 유린당하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강 건너 불구경`으로 드러나 충격과 공분을 낳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3시께 인천 소청도 남서쪽 76㎞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려던 우리 해경 고속 단정(4.5t급) 한 척이 침몰했다. 해경 등에 따르면 중국 어선이 사실상 고의로 들이받아 벌어진 일로, 우리 해상 주권이 철저히 짓밟힌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정부의 사건 은폐 의혹과 무능력한 대응이라고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국민안전처가 사건 발생 31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같은 중차대한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실제로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8일 오후 10시 30분께 이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후 정부의 대응도 무기력했다는 지적이 높다. 우리 경찰이 목숨을 잃을 뻔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해경은 9일 오전에야 주기충 주한 중국 대사관 부총영사를 불러 항의했다. 외교부는 한발 더 늦은 같은 날 오후에야 주한 중국 대사관 총영사에게 항의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우리의 해상 주권이 훼손된 사건의 `급`에 비해 항의의 정도가 지나치게 낮다는 평가를 쏟아 냈다. 한 외교ㆍ안보 전문가는 "영해는 영토ㆍ영공과 함께 `국토`로서 그 나라의 주권과 통치권이 미치는 고유의 바운더리(boundaryㆍ경계)인데, 이를 침범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침략자에게 해경이 공격당하는 사실상 `전시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다"면서 "최근 사드(THAADㆍ종말 단계 고고도 지역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냉각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대중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눈치를 볼 게 있고 안 볼 게 있다. 이번 영해 침범 및 해경 고속 단정 침몰 사건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즉각 주한 중국 대사를 초치하고 중국 정부에 항의와 함께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적인 조치 이행 등을 촉구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 정부부터 쉬쉬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의 주권과 입지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은 중국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입장 표명으로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10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국이 양자 관계와 지역 안정의 대국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처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를 접한 우리 국민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이중 잣대를 비판하며 우리 정부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시민은 "반대로 우리 어선이 중국 영해에서 중국 해경의 고속 단정을 침몰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중국은 실탄 발포도 불사했을 것이고, 해당 어선 나포 후 즉시 주중 한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했을 것이며, 이를 거부하면 외교 단절, 군사적 보복 등을 운운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이성적 대응을 얘기하는 걸 보면 그만큼 우리를 깔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해경의 단속 시 중국 측 저항의 강도가 날이 갈수록 공격적ㆍ폭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러니 중국 어선들이 마음 놓고 우리 바다를 드나드는 것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와 반대로 우리의 대응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한 중국 어선은 2013년 하루 평균 92척에서 지난해 152척으로 3년 새 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해경이 붙잡은 중국 어선은 하루 평균 40척에서 25척으로 38% 감소했다.
이를 두고 한 해경 관계자는 "2011년 12월 고(故) 이청호 경사가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진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면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해경이 해체돼 국민안전처로 흡수된 것도 우리의 대응력 약화를 부른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논란이 커지자 외교부는 11일 추궈훙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하지만 정계 한쪽에서는 여전히 국민안전처의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를 향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국민의당 원내 대책 회의에서 "선박 침몰을 31시간이나 은폐한 것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해경에서는 `윗선에서 사고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안전처 초기 대응이 이해 안 간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오리발을 내미는 청와대가 더 이해가 안 간다. 국민이 중국에게 사고 및 보고 경위를 물어야 하는가"라고 힐난했다. 이는 10일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을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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