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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6월15일 09시46분 ]


생계형 민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수원시와 장기간 대립해온 광교산 주민들의 반발에 애꿎은 불똥이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고은(83) 시인의 거소로 옮겨 붙었지만 수원시는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3월 환경부가 '비상취수원 확보'를 이유로 사실상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거부하자 광교지역 주민들의 울분은 엉뚱하게 고은 시인에게로 터졌다.

그린벨트와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중규제로 인해 식당 건물 신축은 커녕 주택 개ㆍ보수 조차 허용되지 않는 등 불편함을 감수해 온 광교 주민들이 지역민원에 대한 불만을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고은 시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수원시에 맞불을 논 것이다.

시를 쓰는 문인에게 조례까지 만들어가며 10억여원 비용의 리모델링 주택과 각종 공과금 지원 등에 시민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같은 곳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자신들과 비교해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처음엔 '설마' 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던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퇴거를 요구하는 광교산 주민들의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더욱이 고은 시인이 최근 친한 문인 몇몇 사람에게 "더는 수원에서 못 살겠다. 떠나야겠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는 얘기가 나돌자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수원시는 자칫 고은 시인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4년 전인 2013년 수원시에서 주최한 강좌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고은 시인과 인연을 맺게 된 염태영 수원시장은 그해 8월 수원시민에게 인문학적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20여 년 간을 안성에 거주하며 고요하게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고은 시인을 앞장서 수원으로 모셨다.

고은 시인이 수원에 올 경우 광교산 일대가 소설가 이외수의 거처인 강원도 화천의 경우처럼 숱한 인사들이 찾는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이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의 거처는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에 마련됐고 수원시는 그에게 서재와 작업실, 침실 등을 갖추고 지상 1층, 지하 1층, 연면적 265㎡ 규모로 4억여원을 들인 리모델링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랬던 고은 시인에게 수원시와 마찰을 빚어 오던 광교산 주민들이 수원시를 간접 겨냥해 '문인 특혜'라는 시비를 걸어 고은 시인의 퇴거를 주장하는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지만, 고은 시인 스스로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으로 빚어진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마치 범죄자 취급 당하듯 고은 시인이 퇴거할 경우 정치적, 도덕적으로 모든 비난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떠안게 될 공산이 매우 커 수원시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난달 30일 시청 상황실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해 "당초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등은 수원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시를 압박하기 위해 사안의 본질을 벗어난 방법을 이용해 고은 선생을 반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관용될 수 없으며 이는 기본적인 정의의 문제"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미 고은 시인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수원시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인문학 도시'를 표방한 수원시의 위상은 무너졌고, 사태 수습에 더딘 대응책 마련과 관련해 각종 언론보도가 쏟아지면서 비난여론도 커지고 있다.

수원지역 문인인 김진숙씨는 "고은 시인 전입 지원정책이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문제와 의도적으로 맞물려 갈등이 예견됐지만 수원시의 초당적 해결의지는 애초부터 보이지 않았다"며 "수원시가 선제적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도 고은 시인이 광교지역 주민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고은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고은 시인이 수원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번 기회에 고은 시인을 군산으로 모셔오자"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어 이런 식이라면 고은 시인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수원시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판이다.

고은 시인이 지역주민들로부터 퇴거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군산문인협회 측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고은 시인을 모셔올 땐 언제고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던 집에서 나가라고 떼 쓰는건 말이 안된다"며 "수원시민들이 이토록 배려가 없다면 고은 선생을 고향 군산으로 모시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군산시 관계자는 "지자체 예산이 부족하다면 시민들이 펀드를 조성해서라도 지금이 고은 시인의 생가터를 매입하고 주거지 이전 등의 비용을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적기"라며 "앞으로 수원시민들의 퇴거 요구가 계속되고 고은 시인이 수원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면 군산시는 뭐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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