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山 出石寺
姜 沆
錦帳名郞落海東 絶程千里信便風
鳳城消息鯨濤外 鶴髮儀形蝶夢中
兩眼却慙同日月 一心猶記舊鴛鴻
江南芳草群鶯亂 倘有飛艎反寓公
2015년 11월 23일에 위의 시를 배껴쓰면서 한문의 古語(고어)를 비롯해 중국古事(고사)나 중국역사를 모르면 강항의 시를 제대로 풀이하지 못하고 결국에 가서는 선생의 시에 대해 오류를 범하고 말게 되며 그러한 시 오류에 대해 짧게 평한 글이 불현 듯 떠올랐다.
조용필 국민가수와 드라마 주제곡 '간양록'
달포 전에는 국제학술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조용필 국민가수가 불러 힛트를 친 간양록드라마의 주제곡을 꼭 국제세미나를 간절히 원해 찾아올 뜻있는 분들에게 그 당시 1597년 정유재란 당시의 처절함과 강항이 품었던 애국애족사상을 그대로 재현해表出(표출)해 줘야겠다고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배고품 세대가 존재했던 60~70년대 당시 섹소폰 하나로 호남을 주름 잡았던 섹소폰의 대가를 찾아 한 여성에게 라이브로 ‘간양록’을 3~4차례 시켜 본적이 있다.
결국은 그 비통함을 표출해내지 못하고 말아 대타로 나서 거의 악을 쓰다시피 눈물범벅이 되어 ‘간양록’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물론 함께했던 지인들은 숙연해 마지않았다.
이러하듯 그 어떤 일이든 간절함이 배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평소에도 갖고 있는 터라 항상 ‘프로는 아름답다’고만 되뇌이는 주의이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일로 힘들지만 선생의 일이라면 앞뒤 살펴보지 않고 거의 뛰어들고 보는 편인지라 1년의 한 번인 추향제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고 유별스럽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광주향교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내산서원장을 固辭(고사)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바 임무와 역할을 다 해주시는 최홍렬원장께서 춘향제에 이어 추향제에 참석한다고 해 더 불참을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영광내산서원보존회 강재원회장과 추향제 시간을 의식해 늦지않음에도 이미 도착하셨고 선비한복정장에 여유있게 하시는 말씀이 더 가슴을 울리고 만다.
灸雄(구웅)!!<필자의 호>
광주에서 그닥 빠른 출발은 아니었지만 호남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신호등이 하나도 없어 도착 시간이 너무 빠른거예요. 그 덕택에 불갑저수지 근처의 몽오공(수은 선생 부친)묘소와 처사공(수은선생 조부)제각까지 두루 구경을 참 잘하고 왔어요.
생각의 차이지만 참 부지런 하시고 약속시간에 이렇게 철두철미하시니 어찌 더 조심성을 갖추지 않으리오라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주전부리와 커피를 내 드리며 얼른 지금까지 선양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꽃피운다.
최홍렬 광주향교이사장께서는 영암출신으로 녹동서원[鹿洞書院]에 모신 선조의 선양사업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다. 동토 윤순거선생이 영암군수 시절 이곳에서 강항선생의 강감회요 목판을 완성했으며 1960년대 무렵 그 목판을 최씨문중에서 결의해 내산서원으로 보내왔으니 어떻게 보면 녹동서원은 내산서원과 이웃사촌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녹동서원[鹿洞書院]은 1630년(인조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최덕지(崔德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양사(存養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으며 1665년에 최충성(崔忠成), 1695년(숙종 21)에 김수항(金壽恒), 1711년에 김창협(金昌協)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713년에 ‘녹동(鹿洞)’이라고 사액되어 승격되었던 보기 드문 케이스의 녹동서원이다.
그럼 앞에서 강조한 노랫말에 배어나는 처절한 그 당시의 고통을 잘 전달해 참석한 인사들에게 疏通(소통)이 되도록 해 성공적인 세미나로 승화되도록 해야 하는 사안과 최홍렬 내산서원장의 투철한 의식을 조화롭게 섞어보고자 한다.
正反合(정반합)의 논리는 철학이 아니어도 그 어디에서나 물흐르듯 잘 통할 수 밖에 없다.
최고의 섹소폰 연주자는 최고의 경음악과 함께 국제학술세미나의 사전 길라잡이의 백미로 그 여운을 그대로 리트머스종이가 물에 잘 스며드는 것 처럼 잘 녹아들게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당시 백성의 애환이 깃든 풀피리연주는 더 가슴을 옥조이게 하며 우리의 소리 우리의 가락으로 분명코 승화된다.
거기에 풍류 한마당이면 더할 나위없는 아름답고도 선비정신이 녹아들 그런 자리가 마련되고 만다. 이어 세미나 한마당에서는 일본에서 유일한 수은강항선생연구회 무라까미 쓰네오회장의 거침없는 포로신분으로 갖은 고행과 역경속에서 표표히 선비의 정신을 잃지않고 대담하게 왜국을 꾸짖고 심판한 선생을 술회할 것이고 더 나아가 선생의 제자 명록인 은시록에 적혀있는 50여명의 제자들이 이 사회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안동교박사는 잔잔히 그 맥을 풀어갈 것이다.
어디 그쯤 머무르랴!!
호남학의 대가이며 少壯(소장) 역사학파 김덕진교수는 이 지역의 익산 정흥연선생과의 7 ~ 9세 차이가 나는 연륜을 뛰어넘는 우정을 죽창선생의 문집인 죽창집과 역사자료에서 발췌해 내 잔잔히 밝히며 이어간다.
비록 오늘 선생을 모시는 추향제는 찾는 인사가 없어 초라하였지만 수은강항선생국제학술세미나가 위와같이 준비하여지게 된다면 그나마 지하에 계시는 선생께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 얼굴에 작은 미소라도 짓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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