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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니스트) 사간원, 현석규과 임사홍을 추국하라고 청하다.
등록날짜 [ 2019년05월08일 20시06분 ]
1477년(성종 8년) 7월23일에 대사간 손비장 등이 현석규·임사홍이 서로 말다툼 한 것에 대해 차자(箚子 간단한 보고서)를 올렸다.

"신 등이 듣자오니, 지난 17일 저녁에, 사간 박효원을 불러 노공필의 말을 물으시고 전교한 뒤에, 도승지 현석규와 우승지 임사홍 등은 승전환관(承傳宦官 어명을 전달하는 환관)을 대질하며 서로 말다툼을 하였다 합니다.

조정에는 예양(禮讓 예의와 겸양)이 중하온데, 현석규·임사홍은 가장 가까운 처지에 있으면서 하는 짓이 이와 같으니, 예양이 있기나 하는 것인지요? 엎드려 바라건대, 추국(推鞫)하여 죄를 물으시면 합니다."

이러자 성종은 "내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전교하였다. (성종실록 1477년 7월 23일 3번째 기사 ) 다음날인 7월24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니, 사간원 사간 박효원, 사헌부 지평 김제신이 아뢰었다.
"현석규·임사홍은 서로 승정원의 연곡(輦轂 : 임금이 타는 수레) 아래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이는 옳지 못하니 국문하소서."

성종은 "서로 말 다툼한 것은 무슨 일 때문이었는가?"라고 물었다. 우부승지 손순효가 대답하기를, "신은 몸소 보지 못하였습니다마는, 임사홍이 일찍이 신에게 ‘도승지는 임사홍이 노공필에게 말함으로써 음해(陰害)되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성종이 말하기를, "내 뜻으로 생각하기에는 도승지 현석규와 우승지 임사홍은 서로 발명(發明 죄나 잘못이 없다고 밝힘)한 것뿐이다." 이윽고 사간 박효원이 말했다.
 
"승정원은 다만 왕명을 출납할 따름입니다. 홍귀달이 차서를 뛰어 넘은 것에 대해 현석규가 노한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석규는 예(禮)로써 책망하지 아니하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름을 불러, 그 위의(威儀)를 잃었으니 조정의 예양(禮讓)하는 기풍을 쓸어버린 듯하였습니다.

본시 듣건대, 현석규는 아래 사람을 접대함에 거만하다 하더니,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습니다. 신 등이 계청(啓請)하는 것은 대죄(大罪)를 더 청함이 아니라 현석규로 하여금 그의 잘못을 알아서 스스로 새롭게 함이온데, 현석규는 도리어 대간들이 자기의 말을 조작하여 일이 생기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현석규가 스스로 반성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박효원은 현석규 탄핵에 앞장 선 대간이다. 그는 노공필에게서 당일의 사건을 듣고 현석규를 탄핵했다. 그런데 노공필은 임사홍에게서 현석규의 일을 들었는데 노공필의 아우는 과부 조씨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송호의 아비 송익손의 사위였다.

성종은 말하였다. "그 소매를 걷어 올렸다는 일은 현석규가 한 것이 아니니, 그대들이 무실(無實 있지도 않은 일)한 말을 가지고 말함이 옳겠는가?"

박효원이 대답했다. "현석규는, ‘당시에 더워서 소매를 걷어 올렸고 또 입에서 침이 튀긴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나, 옛적에 진시황이, ‘입으로 침이 나오나, 노기를 담지 않고서야 어찌 침이 튀기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은 현석규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이며, 그 정상을 즉석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도 또 연곡(輦轂) 아래에서 직책에 임하지 아니하고 또 스스로 서로 힐난하였으니, 그 죄가 더욱 큽니다."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물었다. 영사(領事) 심회(沈澮)가 대답했다. 1) "비록 소관(小官)이라도 반드시 화합한 뒤에야 모든 일을 이룰 수가 있거늘 승정원은 후설(喉舌)의 지위인데도 이와 같으니 섭섭함이 있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인심(人心)은 고금(古今)으로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승지는 예전과 같지 못하여 아래에 있는 자가 위를 공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부승지 손순효가 머리를 조아리며 울면서 말했다. "신은 상은(上恩)을 입어, 승지(承旨)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근래에 신 등이 위로 성덕(聖德)에 누(累)를 끼치고 아래로 조정(朝廷)에 누를 끼쳐, 신은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승정원을 교체하시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심회도 말했다. "신의 뜻도 승지를 모두 교체함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자 성종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체차(遞差)하여야 하나, 어찌 모조리 교체하여야 하겠는가?"

이어서 성종이 사헌부에서 추핵(推劾)하기를 명하니, 사헌부 지평 김제신이 말했다. "신 등은 이목(耳目)의 소임을 맡았으므로 무릇 문견(聞見)한 바는 은휘하지 아니하고 말하였으나, 근자에 전하께서는 그 말의 근원을 물으시니, 지금 이후로부터는 신 등의 문견은 외로울 것 같습니다."

이어서 박효원이 말했다. "금후로는 말의 근원[言根]은 묻지 않는다고 이미 윤음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전에 말의 근원을 물으시니 신 등은 도리어 송사하는 자와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언관을 대접하기를 송사하는 자와 같이 하시니, 이것은 신 등이 어질지 못함이옵니다."

임금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거늘, 그대가 이와 같이 이르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내가 그대들을 대접함이 참으로 이와 같았던가?"

심회·이극배가 말하였다. 2) "박효원의 말이 지나쳤습니다.” 3) 성종은 묵연(黙然)히 있다가 경연을 마쳤다. 성종은 박효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종실록 1477년 7월 24일 2번째 기사)

사진 1 세계문화유산 선정릉

사진 2 선릉 전경 사진

3 선릉 묘소

1) 심회(1418∼1493)는 1467년에 영의정이 되고, 1471년(성종 2) 원상(院相)으로서 국정에 참여했다. 1473년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성종의 신임을 받아 국가의 대소 일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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